김원기 전 국회의장 인터뷰
민주통합당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의 인터뷰는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출대회 다음날인 2012년 1월 16일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이 렉싱턴 호텔에서 약 2시간 가량 진행하였다. - 편집자 주
박순성 : 어제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가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습니다. 의장님께서도 직접 참여하셨는데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시지요.
김원기 : 2만 명이 넘는 대의원이 참가하는 대회였는데, 투표율이 약 60%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했지만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당의 조직이 취약한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현저하게 대의원의 참여가 적었습니다. 대의원을 한 곳에 모아서 진행하는 현장투표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는 한국노총에서도 당 대회에 대의원을 파견하였습니다. 당 대회에 노동세력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비춰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그 분야에 해결되어야하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노동 쪽이 당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고, 당의 역할에서도 중요한 흐름을 차지할 것이라고 봅니다.
박순성 : 의장님께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도 지내셨는데요. 노동정책이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노동만을 지나치게 배려할 수도 없고, 이러한 면에서 앞으로 민주통합당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도 생각되는데, 노동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조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원기 : 지금 우리의 정치제도로는 노동정책이 숙성되기 어려운 환경에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요. 영국의 노동당은 오랜 기간에 걸쳐 노동정책을 정치적으로 숙성시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와 정치권이 직접 연계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발전되었다지만 선진국의 노동운동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당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국민전체를 아우르는 국가 경영을 해야 하고, 노조는 당장 이해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 본질적인 차이를 당이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민의 대표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행태와 방법에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당은 노동조직의 주장을 당의 정책으로 소화되도록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하지, 그것을 투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운동 하나에 매몰되어 옆도 돌아보지 않는 방식은 정치 전체에 상당한 문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당의 지도부, 그리고 당에 참여한 노동조직도 국가 전체를 생각하는 자세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양쪽 다 주의를 해야 합니다.
박순성 : 이번 전당대회에는 일반시민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노동과 함께 시민사회가 들어왔고 젊은 세대도 많이 들어와 ‘민주통합당이 과거에 비해 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당의 발전에 어떤 도움을 줄까요?
김원기 : 전당대회에서 모바일을 활용하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국내정치뿐 아니라 세계정치사에서도 처음입니다.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다른 정당, 다른 나라에도 확산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젊은 세대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는데, 모바일 투표를 통해 그들이 활발하게 정치를 주도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며, 투표방법의 변화뿐 아니라 문명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참여가 생소하기도 하고 변화에 따른 문제점도 나타나겠지만, 지금의 미숙함, 성급함, 불균형 등은 점차 개선되어질 것입니다.
박순성 : 예전에는 당에서 외부 인사를 영입할 때는 수혈방식이 주로 활용되었는데, 이번에는 시민사회가 한 세력으로 참여하고 또한 청년비례대표제를 통해 만 35세 이하의 젊은 세대를 참여시키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지요.
김원기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큰일을 하기도 합니다. 젊기 때문에, 경험이 많지 않다고 그들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정치에 참여시켜 그들의 고민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청년비례대표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젊은 사람들의 표를 얻기 위해, 성급하게 제도를 만드는 것은 우려되는 일입니다. 보편적으로 30대는 청년으로 보는데, 이번 우리당의 청년비례 자격기준은 만 35세로 제한을 두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나이 제한을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 36-40세의 청년을 배려할 것은 없어도 배제할 필요는 없지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지방정치를 통해서 지역의 경험을 쌓은 젊은 청년들이 중앙 정치로 진출합니다. 우리나라도 청년을 무조건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것 보다는 젊은 세대를 지역에서 정책에 대한 경험을 시키고 난 후에 중앙정치로 진출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 번에 나가려하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순성 : 새로 선출된 민주통합당 지도부에 대한 평을 해주신다면?
김원기 :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새로운 지도부는 아주 잘 된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부 선출이 7명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시민사회에서 한분이 더 진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요.민주통합당은 기존 정치권과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시민사회, 노동이 함께 어우러진 집합이지요. 앞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이외의 모든 세력을 민주당이 끌어안거나 손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한 시민세력이 더 들어와야 설득력이 있겠지요. 욕심을 낸다면 지명직 최고위원에 시민사회 인사를 배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순성 : 이번 전당대회 슬로건이 “점령하라! 2012”로 연말에 돌아가신 고 김근태 상임고문의 최후의 말씀이었는데 김근태 상임고문에 대한 회고를 하신다면?
김원기 : 김근태 의장은 학생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우리에게 큰 자산이었습니다. 김근태 의장에 대한 평가는 본인이 현장정치를 할 때보다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께서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의 김근태 의장을 차세대 지도자로서 제일 기대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들어온 김근태 의장은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정치는 항상 표를 얻는 경쟁을 해야 하는데 기대보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지요.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하고 헌신했던 것에 비해 표를 얻은 만큼만을 성공으로 평가하는 정치권에서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었죠. 그러나 지금은 보수언론조차도 김근태 의장의 위상에 대한 평가가 일관됩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라는 것이지요. 민심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순성 : 시민통합당과의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민주통합당은 일관되게 정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명숙 대표도 정강정책으로 현재의 정치적 어려움을 돌파해 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정강정책에 대해 간단하게 평하신다면?
김원기 : 우리당의 정강정책에서 표방하고 있는 것이 우리당으로서는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다고 봐요. 다만 선거 때가 되면 여야당의 주장이 별 반 다를 것이 없어지는데, 이런 현상이 오게 되는 원인은 유권자들이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경향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약하기 때문이에요. 지역주의 구도가 너무 강한 것도 문제이고요. 지금 권위주의 연장선상에 있는 한나라당이 남북관계나 경제정책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우리 민주통합당은 진보적이라는 막연한 생각정도지, 구체적인 정책을 평가하면서 사람과 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대단히 적어요. 선거 때가 되면 정당들도 명분상 좋은 정책은 전부다 나열식으로 집어넣고 본다고요. 앞으로는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한 정책개발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박순성 : 우리에게는 민주정부 10년의 집권경험이 있습니다. 제3기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김원기 : 정당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의 30%를 정책개발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책개발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정당은 정책개발보다는 선거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표를 생각 안할 수는 없겠지만, 정책을 더 깊이 연구하여 국가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집권을 두 번이나 경험한 야당입니다. 그리고 다음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큰 정당입니다. 단순한 정책의 나열을 지양하고 중요한 정책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이루어야 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을 미리미리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집권을 두 번이나 경험한 야당입니다.
그리고 다음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큰 정당입니다
박순성 : 의장님께서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로써 함께 민주화를 이룩하셨고, 고 노무현 대통령과는 정치적 멘토관계로 가깝게 지내셨는데 두 분 대통령과의 밝혀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한 가지씩 말씀해 주십시오.
김원기 : 나는 앞으로 김대중 대통령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 어렵다고 봐요. 김대중 대통령처럼 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여러 개 남길 수 없어요. 그 분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정도 수준으로 올라서도록 한 것이 큰 업적이고, 또 남북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암흑 같은 70년대부터 이미 목숨 걸고 일관되게 주장한 분이에요. 그런데 나는 지자제 부활을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해요.
1988년 여소야대에서 김대중 총재 시절 원내총무를 했어요. 광주민주화운동, 5공비리 청산문제, 비민주악법철폐문제 등이 큰 현안문제였는데, 우리 평민당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해결해야할 것이 광주문제였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준비 하는데, 그때는 우리 의회정치에서 여야 간의 협상정치가 꽤 성공했을 때였어요. 내가 평민당 원내총무이고 김윤환이 민정당 원내총무를 할 때 합의 처리 된 게 제일 많았던 시기예요. 의회정치가 꽃 피운 시기라고 누구나 정치를 아는 사람들은 얘기해요. 그때는 총무들이 여러 차례 만나서 토론하고, 의제를 조율해서 영수회담을 했어요. 3당 야합 전의 마지막 회담인데 지자제 문제가 의제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국회의원 선거는 야당이 좀 차지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 지방선거를 해가지고는 전부 다 여당이 차지하지 야당은 이기지 못하는 구조였어요. 호남까지도 선거에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은 여당사람들이었지 야당은 아주 못살고, 참여조차 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바깥출입 하는 사람들은 호남에서도 여당이 했거든요. 그럴 때인데 총재께서 지자제 합의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김대중 대통령은 ‘지자제 선거해봐야 참패가 사실이다. 그러나 민정당이 되더라도 대통령이 그냥 임명한 사람보다 선거로 뽑힌 사람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느냐. 지자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정권교체의 가능성도 없다.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제일 중요하다. 지자제 안 되면 영수회담은 실패다. 다른 것을 얻더라도 지자제를 안 하면 영수회담은 파토다.’라고 말씀 하셨어요. 그 때 누가 뭐라고 해도 광주문제가 당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그것보다도 순위를 매기자면 김대중 대통령은 지자제가 우선순위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자제를 부활하기로 합의를 했지요. 나중에 3당 야합 후에 그쪽에서 안한다고 해서 대통령께서 단식까지 하셨어요. 누가 했더라고 지자제는 했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지자제 해봐야 이길 가능성이 없는데도 지방자치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지방자치가 많이 앞당겨진 것이지요.
박순성 :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대로 지방자치가 실시되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네요. 노무현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도 한 가지 말씀해 주시지요.
김원기 :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2002년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결국 여론조사로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지만, 그 후에 정몽준이 협력을 않고, 외국을 가버리고 하는 통에 문제가 많았어요. 나는 선대위원회 상임고문을 하면서 내부적으로 대통령선거를 총괄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쪽에서는 정몽준 대표가 자기는 직접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하겠지만, 그쪽 사람들의 자리요구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엉터리를 많이 요구하면서 각서를 받으려 했어요. 그래서 끝까지 안 된다고 했는데, 여론조사는 정몽준하고 손잡으면 당선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당선이 안 된다고 하니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도 안타까워서 ‘대통령 후보 말고는 다른 건 다 준다 해도 상관없다고 해라’ 그랬어요. 정권잡기 위해서 살인도 한다는데 그 협상을 망치려 하냐고.
그런데 나중에 시간도 없는 최후에 와서 정몽준이 그쪽 중진을 나한테 보냈어요. 정몽준 후보가 나를 만나서 협상을 하라고 했다고. 그쪽 이야기는 ‘우리도 그 동안에 많이 설득을 했다. 서류로 써 달라는 얘기는 아니고,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만나서 밀실에서 덕담 좀 해 달라. 당신과 협력해서 대통령이 되면 당신한테 어떻게 해 주마.’ 하는 덕담을 해 달라. ‘밀실에서 정치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정치상황이 바뀌면 못 지키는 것 아니요. 그러면 바로 공동유세에 나서겠다.’ 이러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하니 그렇게 해줘도 무방할 것 같더라고요. 노무현 후보를 만나서 그 얘기를 하니, 노 후보가 ‘꼭 그렇게 해야 대통령이 될 거라면 차라리 대통령 안하겠습니다.’ 그러더라고. ‘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리가지고 단일화 안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여러 차례 얘기를 했고, 아무리 밀실에서 단둘이 하는 얘기라도 약속한 걸 어떻게 안했다고 합니까. 약속한건 해야지. 그렇게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낙선 하는 것으로 정치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하더라고. 나와 단 둘이 한 얘기예요. 내가 참 멍해지더라고.
‘후보 말이 옳은 얘기다.’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어요. 바로 상대방을 만나서 얘기를 했지요. 그대로 전달해 줬어요. ‘단 둘이라도 아무 증거 없이 말로 했더라도 약속한건 약속한 것이다. 그걸 안했다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국민한테 서로 간에 얘기하고 안했다하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보다는 낙선을 통해서 정치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그런다.’ 그대로 얘기했어요. 그러니 그쪽에서도 할 말이 없어졌지요. 나중에 자기들도 선거운동에 아무 것도 안하면 욕먹게 생겼으니까 잠깐 동안 선거운동에 참여했어요.
이 이야기는 숨겨진 이야기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에 불리한 조건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독특한 사람이기도 했지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정치인 거의 없다고 봐요.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 이라고 하는 정치인이 대통령까지 된 거 아니겠어요.
진정한 원칙의 정치인은 바로 우리당의 두 분 대통령이셨네요.
여의도에는 사이비 원칙주의자도 많은데 귀감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순성 : 의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진정한 원칙의 정치인은 바로 우리당의 두 분 대통령이셨네요. 여의도에는 사이비 원칙주의자도 많은데 귀감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19대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의장님께서는 6선 의원을 하셨는데,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한 말씀 해주시지요.
김원기 : 정치인 스스로 자존심을 가져야 되요. ‘내가 지도자다’ 하는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졸이 되지 말아라’. 지금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이에요. 정치혐오가 너무 확산되어 있어요. 이것이 정치를 더 불행하게하고 정치를 발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17대 국회에서 고별사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정치인 스스로가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당에서 19대 총선 공천을 하게 될 텐데, 지난번 18대 공천처럼은 안됐으면 좋겠어요. 사회 환경이 변하니 시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정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천 전체를 떠맡겨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이 하도 신용을 잃다 보니까 획기적인 조치를 한다고 여야가 모두 외부에 공천권을 넘겼는데,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것과 정당의 공천은 다른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당시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시민사회에서 온 사람들에게 심사받기 위해 줄줄이 않아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여야 다 같이 나왔어요. 우리 민주당 최고위원 두 사람에게 말했어요. ‘꼴이 아니다. 너는 나가지 마라. 그것은 비정상적이고, 자존심을 완전히 잃는 거야.’ 18대 국회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처음 축사할 때,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라.’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여야 정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그러니까 일어난 현상인데 정치지도자라고 하는 자존심을 가져라. 그래서 지도자답게 행동하라.’
또 한 가지 17대 국회 고별사에서 여야 정치인들에게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우선 야당에게는 ‘우리나라 정치가 이정도로 발전을 했는데도 국민들은 독재정치 때보다도 지금의 정치를 조금도 더 좋게 안보는 비극이 있는데, 다른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국회가 항상 난장판, 전투장이 되어서 사생결단의 장이 되고 그러니 야당 의원들에게 부탁한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이렇게 올려놓은 공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민주당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이 수준으로 올려놓은 여러분들의 마지막 장면이 항상 싸움판이 되니까 정치가 많이 변화했는데도 국민들은 그 장면 하나만 보고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거다. 그러니 마지막 장벽을 야당이 헐어라. 그러려면 물리적 저항을 안해야 하는데, 수도 많은 사람들이 멋대로 정치를 할 때 마지막 저항수단까지도 포기하라면 염려가 있을 것이다. 저쪽이 대화와 협상 없이 수로 밀어 붙일 때,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다음 선거에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반영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이 국민을 믿고 모험을 해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당에게도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가 산업화되는데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이 수준까지 올라온 데는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 듣기 싫은지 모르겠지만, 이번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다수를 가지고도 소수와 협상하고, 타협하고, 존중하고 이런 자세를 보이면 여러분들이 빛이 나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외국의 국가원수가 와서 연설을 할 때가 아니면 박수를 치지 않는 전통이 있습니다. 박수치기 경쟁을 벌이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30년 정치를 하다 스스로 물러나면서 여야 모두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니까 여야의원 모두가 일어나서 박수를 쳤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없었지요. 사실 야당의 입장에서는 18대 국회에서 내가 부탁한대로 하기는 무척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도 국민을 믿고 위험을 각오했으면 하는 생각이었어요.
박순성 : 17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수행하셨는데요, 국회의장 재직 시를 회고하신다면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까?
김원기 : 17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국회는 거수기였어요. 내가 국회의장이 되기 전에는 국회의장을 대통령이 지명했어요. 국회에서 선거하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본질은 대통령의 임명이었지요. 내가 17대 전반기 국회의장이 되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 했다면 어떤 상황이 왔을지 모르지만, 국회는 꽤 자율성이 있었어요. 국회사무총장이나 국회직을 임명할 때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자율적으로 임명했어요. 국회인사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번도 제동을 건 적이 없어요.
정동영이 당 대표를 하고 김근태가 원내대표였던 때였는데, 두 사람이 국회의장 공관으로 찾아와서 직권상정 해 달라고 했을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이러이러 해서 적절하지 못하다. 당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거절한 적이 있어요. 또 한 번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찾아와서 부탁을 했어요. 안된다고 했죠. 그러니 대통령이 전화를 했어요. ‘꼭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 하시느냐.’ 나는 ‘그게 지금 보고를 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의장으로서 내 인기를 생각해서가 아니고, 그것은 정부를 위해서도, 당을 위해서도 그 방법으로 얻는 것이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대통령께서 ‘의장님이 틀려 본 적이 없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하더라고요.
그러한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의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참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우리나라 정치학자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를 거예요. 17대 국회부터는 의원입법이 많이 늘어났어요. 그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공부할 이유가 없었어요.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오더에 손을 들면 되니까 손만 고장 안 나면 되지 머리를 쓸 이유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국회가 변하니까 의원들도 그 전에 비해 공부를 많이 해요. 사실 의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언론도 국민들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순성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남겨주시고 싶은 말씀,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김원기 : 내가 정치일선에서 떠난 후에 제일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개헌이에요.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통령과 총재를 겸하고 있을 때,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제왕적 대통령을 두고, 다른 제도를 바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대통령이 총재인데, 대통령 앞에서 모든 정책의 잘못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때문이라고 얘기하니까 조선동아에서 기사를 많이 써 주더라고요. 내가 대통령을 들이 받는다고 생각했나 봐요. 예전에 새정치국민회의 만드는데 반대해서 민주당을 지키고 있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사실은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얘기를 했어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고는 all or noting의 전투적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 드렸지요. 개헌문제는 연구원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권력이 지나치게 대통령에게 집중됩니다. 권력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고, 갈등과 미움도 대통령에게 집중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이 끝이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대통령 임기 중에 자식이 구속 되거나 자식이 아니면 임기 끝나고 자기가 구속 되었거나. 지금 우리나라 정치체제가 87년 체제인데 그 이후에 대통령을 만들어낸 정당은 반드시 소멸했어요. 이번에 한나라당 사람들한테도 얘기 했어요. 대통령을 만든 정당은 반드시 없어졌고, 그 대통령은 야당이 요구해서 당을 떠난 것이 아니고, 자기를 만들어준 당이 나가라고 해서 떠난 겁니다. 1987년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 그랬어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어요. 이명박도 반드시 쫓겨난다고 얘기했어요. 단 한건의 예외도 없었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어요.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이미 실패했습니다. 18대 국회에서 제도를 개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바꿔야한다면 언제가 되던 바꿔야 할 거에요.
박순성 : 오늘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 많은 고견을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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