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선 결과와 여성당선 현황
4.11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과반의석(152)을 확보하여 제1당 자리를 지켰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합계 140석의 의석을 얻었다. 정당지지율로 보면 새누리당 42.8%, 민주통합당 36.5%, 통합진보당 10.3%, 자유선진당 3.2% 순으로, 야권연대 지지율을 합해야 근소하게 새누리당을 앞서는 수준에 그쳤다.
금번 총선의 경우 이전 선거에 비해 지역구 여성공천 의무규정을 마련하고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유독 논란이 있었고, 남성후보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던 탓에 여성당선 결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전체적인 여성당선 현황을 보면, 전체 300명의 당선자 중 여성이 47명(15.7%)으로, 정당별로는 민주통합당 24명(18.9%), 새누리당 17명(11.2%), 통합진보당 5명(38.5%), 자유선진당 1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이 같은 19대 총선 여성당선 결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여성의원 약진’으로 요약된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주요 정당에서 여성후보자에게 가산점 주기, 지역구 후보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후보로 공천하기 등 여성의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 특히 지역구 선거의 경우 역대 최다인 19명이 당선되었으며, 이 가운데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여성후보 공천 노력이 일정부분 성과를 본 것이라 할 수 있다.”(이정진, 2012: 64)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2008년 18대 총선 결과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민주당 지역구 여성공천은 15명(7.3%)에 불과했고, 당선자도 4명에 그쳤다. 선거구도 자체가 한나라당의 승리였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여성후보 공천 및 당선비율은 한나라당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2. 4.11 총선, 女風은 정말 불었나?
지난 2004년 17대 총선 결과는 기존 한국정치의 이방인이었던 노동자와 여성이 제도권에 확고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반공주의, 가부장주의, 지역주의에 기초했던 권력이 허물어지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 것으로 평가(김동춘, 2004)될 만큼 중요한 변화의 계기였다. 그러나 2008년, 2012년 총선 결과분석마다 이어지는 여성약진이라는 평가는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국제적인 여성정치참여 현황 기준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2011년 12월 말 현재 299명중 여성 국회의원 44명(14.7%)으로 87위 수준이고, 19대 국회 여성참여비율 47명(16%) 역시 80위 수준에 불과하다.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이 125명 중 20명으로 16.0%, 슬로바키아(Slovakia)가 150명 중 24명으로 16.0%를 기록하고 있다. 전반적인 세계 여성정치참여 현황과 비교해도 한국은 여전히 평균에 미달한 수준이며, 아시아지역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다.
오히려 이제 정말 여풍이 불어야 할 시절이 되었다고 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여성당선 수치를 바라보는 초첨을 ‘여성이 얼마나 늘었나’가 아닌 전체 중 남성에 비해 ‘여성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로 조금만 이동해보면 판이하게 다른 해석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참여가 몇 명 더 늘어난 것 보다 전체 지역구 당선자 중 남성비율은 여전히 압도적인 92.3%를 차지하고 있고,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남성 당선자는 300명 중 253명으로 84.3%에 이른다.
아마도 그 기준이 정치나 국회의원은 여성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1950년대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은 제헌의회에서부터 8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여성 국회의원 수가 최대 5명 이상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9대 국회를 제외하면 2000년에 와서야 여성 국회의원 수 두 자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제도개선에 힘입어 16대 국회에서부터 여성의원 수가 증가해서 16대 지역구 여성의원은 5명, 17대는 10명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선출직 의원수로 최대가 된 19대 국회에서도 지역구 246석 중 여성의원 의석의 비율은 7.7%에 불과하다.
3. 여성후보의 지역구 경쟁력과 한계
여성이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면 여성들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바로 ‘후보가 될 권리’이다. 이구동성으로 당내 경선과 공천이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본선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정당들은 후보 공천의 중요한 기준으로 ‘경쟁력’을 꼽으면서도 여성들은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폄하하면서 공천에 인색했지만, 19대 총선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후보들은 이런 잘못된 관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었다.
본선에 뛴 여성후보의 경우 대부분 선전해서 민주통합당의 경우 21명을 공천해 13명이 당선됨으로써, 여성의 지역구 공천 대비 당선비율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입증됐다.
실상 여성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통념은 지난 18대 총선 당시에도 잘못된 것임이 확인되었지만 반복되어 온 주장이다. 18대 총선에 지역구에서 낙선한 여성후보의 득표율을 살펴보면, 모두 해당지역의 정당득표율에 비해 후보의 개인득표율이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선거 시기 공천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이 정당에 있고, 정당 내에서 후보를 어떻게 공천하느냐 하는 방법은 여성후보의 기회 확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직후보의 선정기준 역시 정당 민주화라는 큰 주제와 맞물려 논의가 진행되겠지만, 별도로 여성할당 규정을 정해놓지 않은 정당의 경우에도 투명한 관료제적 후보선정과정의 확보는 여성의 대표성 확대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Matland, 2005: 96). 공천에 관한 규칙이 공개적이고 분명하지 않을 때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없는 여성후보들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정당권력의 내부로 다가가기 위한 전략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후보는 적극적으로 지역구에 도전하고,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른 당내공천시스템 형성에도 기여함으로써 여성후보들에게 보다 많은 공천 기회의 확보가 가능하다.
그 외에 지역별로는 여성 지역구 당선자를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도에서 각각 9명과 6명의 여성 후보자가 당선되어 전체 지역구 여성 당선인의 78.9%가 수도권 지역에서 배출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로 파악되었는데(여성 지역구 당선자 14명 중 서울경기지역 당선자가 12명), 이는 아직까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여성후보가 공천되거나 당선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당이 각 지역에 터잡고 활동하는 여성후보를 발굴·육성하는데 보다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정당 내 여성리더들도 이를 위한 관심이 요구된다.
4. 女風을 일으키는 힘 : 적극적 조치와 선거제도 개혁
여성후보의 경쟁력과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시스템의 마련 외에 2000년 이후 여성의 국회진입을 크게 확대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여성정치할당제의 도입을 통한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지난한 여성정치운동의 성과로 현재 공직선거법에 지역구 30% 여성공천 노력 및 비례대표 50% 여성할당과 남녀교호순번제가 명시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지방의원 지역구 여성의무공천 규정이 마련되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가장 크게 쟁점화 된 부분 역시 지역구 여성의무공천제였다.
다만,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아닌 각 당 당헌당규를 통한 지역구 여성공천 확대가 논의되었다. 민주통합당은 지역구 여성 15% 의무공천을 당규로 제정했고, 새누리당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지역구 여성공천 30% 노력 및 경선 시 여성후보자 가산점 부여를 결정(2012.1.16)해서 공천개혁의 바로미터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결정은 이미 공직선거법과 당헌에 규정된 원론적인 내용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모두 오히려 혁신으로 포장된 정당 통합 과정에서 여성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할당조항이 일부 후퇴하였다.
민주통합당은 여성가산점 조항이 당헌에서 당규로 밀려났고, 그나마 지역구 15% 여성의무공천 당규제정에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해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를 구성하여 가동했지만 해당 위원회의 역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당 지도부에 당규이행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의무조항이지만 위반 시 조치에 관한 내용이 비어있어 사실상 반쪽짜리 제도였고, 결국 이후에 당규개정을 통해 15% 의무공천을 완화하는 단서조항이 추가되었다.
통합진보당 역시 3자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구)민주노동당 당시의 여성할당 30%가 20%로 후퇴되었고, 야권연대 와중에 이마저도 준수되지 못했다. 광역별로 여성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중앙당이 명부를 거부하는 패널티도 이행되지 못했다.
여성할당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북구유럽의 경우 진보정당의 여성할당 실천이 여타 주요정당에까지 확산되는 할당제 '전이현상(contagion theory)’을 보여주고 있는데(Matland and Studlar, 1996) 비해, 한국의 경우 할당제 전이현상은 전개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19대 총선에서는 ‘더 중요한’ 당 통합과 야권연대를 위해 ‘부차적인’ 여성할당이 희생되는 양상이 드러났다.
개별적인 후보간 합의를 통해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여성가산점이 적용된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각 당의 대표가 여성이고 협상대표도 여성이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 여성참여확대를 위한 적극적 조치는 거의 관철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여성당선자 확대는 지역구 여성의무공천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러한 여성정치할당제를 정당 내에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국회의원과 정당 내 여성조직의 강력한 연대, 여성당원들의 지지·지원이 하나가 되어야만 관철이 가능하다.
더불어 여성 지역구의무공천제를 포함한 적극적 조치 외에도 여성참여확대에 한정하지 않고 선거제도 전반을 개혁할 수 있는 제도개선에 대한 여성 의원들의 기여가 필요한데, 바로 비례대표 의석비율 확대가 그것이다.
금번 19대 총선 당시 총선유권자네트워크, 경실련, 여성투표행동 퍼플파티 등 시민단체들의 정책요구에 공히 포함된 비례대표 확대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다양한 계층·직능의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고, 여성의 대표성 확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소선구제단순다수대표제에 비해 소수의 이해가 반영되기 쉬운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의 투표율도 일반적으로 높아진다(Lijphart, 1994: 1-14). 물론 지역구 기득권과 국회의원 의석수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부담이 없지 않지만, 이제 한국의 경우에도 의석수 확대를 공론화 할 때가 되었다는 의견(이현출, 2011: 22)이 정치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의원정수만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으면서 선거구조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비례대표 의석비율 확대를 시도한다면 새로운 정치혁신의 시도가 될 수 있다.
5. 남성중심적 정치문화를 넘어 평등정치를 향한 여성의원의 역할
4.11 총선은 여성들의 지역구 진출 확대라는 성과와 함께 여전한 보수적 남성중심 정치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선거였다.
여성의무공천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 외에도 여성비하 막말발언과 성추행 당사자가 공천되고 당선되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기대보다 낮은 투표율로 인한 야권연대 다수의석 확보 실패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넘겨 온라인 SNS 상에서 ‘20대여성 투표율이
8%에 불과하다’는 근거없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군소정당의 보수성이 그대로 드러나 비례대표 후보 명부 전원을 남성으로 배치한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 등 정치권 저변의 보수담론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도 여성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기존 정치권의 남성중심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들 간의 연대와 정당 내 여성운동의 강조가 요구된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관한 모델로 평가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여성정치참여가 가능했던 요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①100% 명부식 비례대표 선거제도 외에, ②정당 내 여성조직의 발전과 ③여성을 위한 정당의 전략을 그 동력으로 꼽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당 내 여성조직 발전의 일례로, 1920년에 조직된 사민당여성연합(the Social Democratic Women's Federation, SSKF)이 큰 역할을 했는데, SSKF의 여성당원들이 계급 뿐 아니라 젠더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독자적인 정치적 요구사항을 형성할 수 있었다. 초기에 정당 내부에서는 ‘젠더’를 정당 이념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데 대한 비판이 일부 있었지만, 정당 내 여성운동을 통한 여성 대표성 확대 노력은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7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이전에 비해 늘어난 이후 국회 내의 여성연대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나, 소속 정당 차원에서도 또 정당을 넘어서는 차원에서도 여성들 간의 연대는 적극적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오유석·김은희, 2008). 이제 각 정당에서 여성정치참여의 주체로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여성정치인들은 여성단체들의 외부적인 지지와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에 대한 요구와 함께 스스로 얼마나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연대에 힘쓰고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
그 외에 여성이 여성을 대표하는가에 관한 질문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국회의원 각자의 젠더정체성을 확인하고, 여성친화적인 의정활동은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이미 17대 국회 여성의원 확대가 여성관련 의제 및 여성
관련 법 제·개정 증가, 각 운영위원회 및 상임위원회에 여성 의원 수 증가, 남성의원들의 여성관련 법률안 발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김현희·오유석, 2010),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가치가 존중되는 성평등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성평등정책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정책도 또 여성의원만이 부담해야 하는 역할도 아닌 사회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모색이다.
| 참고문헌 |
∙ 김동춘(2004). “17대 총선과 한국정치: 평가와 전망”,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포럼(2004. 4).
∙ 김은희(2011). “여성정치할당제를 넘어서_실질적 여성정치세력화를 향한 전망”, 「여성정치할당제 - 보이지 않는 벽에 문을 내다」, 인간사랑, 2011.
∙ 김현희·오유석(2010). “여성정치할당 10년의 성과와 한계”, 한국사회과학연구소(편), 『동향과 전망』, 2010년 여름호.
∙ 오유석·김은희(2008). “17대 여성 국회의원 의정활동 성과와 과제”, 17대 여성의원,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나 토론회, 21세기여성포럼/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2008.2) 참조.
∙ 오유석·김은희(2008). “18대 총선 결과와 향후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 모색”, 통합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주최 18대 총선 평가간담회(2008.5.14) 발제문.
∙ 이정진(2012). “제19대 총선 결과 분석 및 공천 쟁점”, 제19대 총선과 정당정치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19대 총선 평가와 분석 공동학술토론회 (2012.4.19).
∙ 이현출(2011). “중복입후보제와 여성대표성”, 19대 총선을 통한 여성 대표성 제고방안 모색, 2011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 기획패널.
∙ 조현옥·김은희(2010). “한국여성정치할당제 제도화과정 10년의 역사적 고찰”, 한국사회과학연구소(편), 『동향과 전망』, 2010년 여름호.
∙ Lijphart, Arend.(1994). “Unequal Participation: Democracy’s Unresolved Dilemma.”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91:1.
∙ Matland, Richard E.(2005). “Enhancing Women’s Political Participation: Legislative Recruitment and Electoral Systems” Women in Parliament beyond numbers, IDEA.
∙ Richard E. Matland and donley t. Studlar.(1996). “The Contagion of Women Candidates in-Member District and Proportional Representation Electoral Systems: Danada and Morway,” The journal of Politics.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여성의 국회진출 촉진을 위한 과제와 여성국회의원의 역할.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