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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금융의 역할

1. 시작하는 말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와 민생경제의 피폐, 심지어 골목상권까지 위협하는 재벌들의 횡포가 서민 생활까지 위협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자 정치권에서는 선거철을 맞아 경쟁하듯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당의 정강정책을 바꾸네, 총선 공약으로 내거네 하고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를 약속하고 있지만, 그 실천 가능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크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워낙 강해져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장벽을 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에 따라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정책내용이 천양지차이고, 아직 경제민주화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학계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관점에 따라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경제민주화를 하기 위해 넘어야 할 현실의 장벽은 결코 만만치 않다.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재벌들의 골목상권 진입을 몇 년 막아주는 등 그런 미봉책 수준의 일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국가경제의 기본 틀과 운영 패러다임을 바꾸어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 특히 서민·중산층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하고 안정되게 하는 일이다.
금융은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금융측면에서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위해서 할 역할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금융민주화’는 그 자체로서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있다면 이는 동시에 금융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인도 될 것이고, 반대로 금융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있다면 이 또한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경제민주화와 금융의 관계를 조망하고,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금융의 역할을 정리·분석해보고자 한다.



2. 경제민주화의 개념과 금융의 역할
경제민주화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아직 합의된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민주화 연구자들의 견해를 보면 “양극화를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에 입각해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규제하되,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하고(유종일, 경제 119), 또는 “극심해진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권력을 교체하여 경제의 자기조절 기능을 회복하는 한국경제의 재활플랜”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선대인, 문제는 경제다). 또는 다소 극단적인 형식논리에 입각해서 경제민주화를 경제에서의 ‘1인 1표’주의, 즉 경제권력 행사의 평등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장하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와 같이 보는 사람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견해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을 추출해보면, 경제민주화는 체계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과도한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여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필자 나름대로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경제민주화는 (i) 사전적으로는(ex ante) 균등한 기회, 대등한 지위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행하는 경쟁, 경쟁의 결과에 상응하는 정당한 성과배분을 보장함으로써 경쟁의 전 과정을 통해 공정성을 유지하고, (ii) 사후적으로는(ex post) 경쟁의 패자를 배려하고 경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분배상의 불균형을 교정하며, 그리고 (iii) 다양한 국가 활동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혜택과 부담이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전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 정당한 승자와 정당한 패자가 결정되고 승패에 합당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짐으로써 경쟁의 정상적 기능과 효율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고, 사후적으로는 사회구성원에게 최소한 일정 수준의 삶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저한의 복지를 보장한다는 국가의 사회·경제적 의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경쟁의 패자에 대한 배려라는 실패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보험을 제공함으로써 구성원의 창의로운 도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활동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시장개입을 수반하므로 국가가 국가활동으로 국민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공정하게 배분되고 국가가 국민들에게서 지우는 부담을 공평하게 분담시킴으로써 국가의 시장개입이 시장경제를 왜곡하지 않도록 하고 또는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시장경제의 왜곡을 시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경제민주화는 모든 국가경제의 구성원에게 성공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게 하고 실패의 두려움을 덜어줌으로써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즉, 패자가 되는 두려움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즉,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미래를 위한 도전을 촉진한다. 또한 경제민주화는 경쟁에서의 기회의 균등, 대등한 지위, 공정한 규칙을 보장하므로 경제내의 기득권의 틀을 깨고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보완하는 작업이다. 시장기능을 복원함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횡포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사후적으로 구제하는 작업이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보면, 금융이 경제민주화에서 왜 중요한지 그리고 금융이 경제민주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자명해진다. 이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이슈를 추출해서 정리·검토한다. 우선 공정경쟁의 핵심이슈라 할 수 있는 재벌금융 문제를 보았다. 그리고 금융취약계층의 보호·지원과 관련된 핵심이슈로 중소기업금융 문제와 양극화 문제, 금융소비자보호를 다루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조세정의와 관련된 이슈인 금융관련 세제개혁을 다루었다.


3. 재벌금융의 개혁
재벌문제가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고, 뿐만 아니라 금융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이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소유·지배하게 되면 금융계열사를 이용해서 경제력 확장과 소유·지배구조를 강화하기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재벌문제가 더 심해질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이 왜곡되고 금융소비자 보호가 취약해질 우려가 있으며, 때로는 동반부실화할 위험이 있는 등 계열금융기관과 관련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이 저해되기 쉽다. 따라서 재벌금융 문제는 재벌개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을 위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재벌금융과 관련된 개혁과제는 주로 재벌그룹의 금융기관 소유·지배와 관련된 문제들이며, 여기서는 금융기관 대주주의 적격성 강화 및 금융기관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금산분리, 금융계열사분리 청구제(또는 명령제)를 보기로 하자.



1) 금융기관 대주주의 적격성 강화 및 금융기관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우선 계열금융사가 모그룹을 위해서, 또는 모그룹의 목적에 따라 경영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금융기관으로 건전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전한 주주가 금융업을 목적으로 경영할 때는 장려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억제해야 한다. 한가지 방법은 대주주의 적격성을 강화하여 비적격자의 금융기관 소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재무비율 등 건전성 요건이나, 금융법령 위반 또는 배임·횡령·부당내부거래·담합행위 등의 일정수준 이상의 위법행위를 하지 말 것으로 적격성 기준으로 설정하고 이를 엄격히 집행함으로써 계열금융사의 건전하고 정직한 운영을 유도할 수 있다.
건전성 요건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일정수준 이상의 범법행위시에는 즉시 부적격 판정을 내리되 심각한 사안의 경우에는 영업정지 명령, 또는 의결권 제한 조치와 의결권 처분 명령도 동시에 내림으로써 금융기관이 더 이상 부실화될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적격성 규정과 기타 금융관련법령을 엄격히 집행함으로써 재벌계열 금융사들이 관련법규를 가볍게 보거나 또는 벌금 등 처벌을 불법행위의 허가비용 정도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금융기관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법규를 어긴 직원에 대해 당해 금융사 또는 모그룹이 여하한 방법으로든 보상해주지 못하게 함으로써 직원들의 무모한 법규 위반행위를 억제해야 한다.
이와 같이 불건전행위를 억제하고 건전하지 못한 계열금융사의 퇴출을 유도하는 한편, 재벌 계열금융사들이 금융전문그룹으로 분리·전환하여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유도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2) 금산분리


재벌의 금융지배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중요한 문제만 몇 개 예를 들자면, 금융계열사를 이용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 및 지배구조 강화, 고객돈을 모그룹을 위해 이용하는 등 이해상충행위, 계열금융사의 비자금 창구 역할, 금융자금의 독과점구조 고착, 자본력(자금력) 집중, 금융시장·금융산업의 왜곡, 모기업·금융계열사·기타계열사 간의 금융거래로 인한 위험의 집중, “시스템적으로 위험한” 그룹의 형성 등을 들 수 있다. 즉, 재벌문제의 핵심에 산업재벌의 금융지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산업재벌의 금융지배는 금지(즉, 금산분리)되어야 한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4%에서 9%로 완화한 은행소유한도를 다시 원상복구하여 4%로 낮추어야 하고, 또한 PEF 등을 통한 우회지배를 금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실질적으로 재벌의 지배하에 있는 제2금융권도 궁극적으로는 산업재벌로부터 분리해야 한다8).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재벌금융 문제가 야기되는 부분이 제2금융권이다. 이미 재벌이 소유·지배하고 있는 증권 및 보험사를 일시에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크고 또 쉬운 일은 아니만, 증권·보험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소유제한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거나 대주주의 적격성 강화 등의 방법을 통해 제2금융권에 금산분리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금융계열사분리 청구제(또는 명령제)


재벌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금산분리를 할 수 없는 경우 특정행위를 제한하는 행위규제를 한다. 그러나 행위제한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또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아 금융계열사분리 청구제(또는 명령제)와 같은 구조적 교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정한 건전성 요건을 심각하게 충족하지 못할 경우, 또는 부실화되거나 부실화될 우려가 현저한 경우, 또는 특정 중요 금융관련법령 등을 위반한 경우에 적법한 절차를 걸쳐 분리청구(또는 명령)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제도의 남용을 막으면서도 문제가 심각해지거나 확산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강력한 구조적 교정책은 실제 집행하지 않더라도 재벌들의 위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약하고 집행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은데, 구조적 교정책은 이를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4. 중소기업지원과 금융의 역할
경제민주화는 한편으로는 거래상 또는 경쟁상의 약자를 보호하여 공정한 거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적 지원을 통해 현격히 약한 지위로 인한 어려움을 벗어나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도급기업 보호와 골목상권 보호 등 공정거래와 관련된 사항은 전자에 해당하고, 금융지원은 각종 조세·보조금·R&D 등의 지원과 함께 후자에 속한다.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들은 항상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융지원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융지원은 일반적으로 저리의 정책금융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자금부족 상태에 있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저금리 혜택이 없더라도 시장에서 원활하게 금융자금을 쓸 수 있는 것도 큰 힘이 된다. 따라서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의 역할은 정책금융 강화와 금융중개기능 개선을 통한 시장자금 공급 증대로 요약될 수 있다.
정책금융의 경우는 충분한 규모의 자금을 가급적 낮은 금리에 공급하고, 지원대상 기업의 평가·선정·관리 방법과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에게 시장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정보 수집·평가 능력, 위험관리능력, 여신 사후관리 능력이 개선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즉, 우리 금융산업의 질적 수준과 실력이 향상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중소기업 지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관계가 공정해져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기업과 하도급기업간의 불공정거래관계가 보편화되어있는 재벌위주 산업구조에서는 재벌계열 대기업이 중소 하도급기업의 잉여를 모두 빼앗아 가는 부당행위를 하기 매우 쉽고, 그러한 행위가 일반화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잉여착취구조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어떠한 형태의 지원이든 그 혜택은 중소기업에 남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대기업에 모두 귀착된다. 따라서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실질적으로 간접적 대기업 지원책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삼사십년 넘게 중소기업의 정책적 육성·지원을 위해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소수의 재벌계 대기업만 비대화한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다. 이와 같이 중소기업금융의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은 재벌문제이고, 중소기업금융의 개선과 재벌개혁이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사업상 리스크와 성장전망 등이 재벌과의 관계에 크게 좌우되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으로서는 합리적인 금융적 판단이 불가능하게 되어 원활한 자금공급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중소기업에는 자금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반면 재벌계열 대기업들은 모그룹의 조직, 유통망뿐만 아니라 거대한 자금력까지 갖고 있어 중소기업은 재벌계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많은 시장에서 재벌계열 대기업이 경쟁자를 몰아내고 독점적 공급자가 되어 그 지위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경쟁 중소기업은 도태되고,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대기업은 부당·초과이익을 얻고 있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중소기업 지원 및 육성을 위해서는 재벌개혁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는 실효성 있는 중소기업금융을 통해 재벌계열 대기업과 대등한 지위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들을 많이 키울 수 있다면 시장에서의 경쟁압력으로 재벌개혁이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5. 금융민주화와 양극화 해소
우리 경제가 처한 핵심문제 중의 하나가 양극화 문제다. 경기순환과정의 불경기나 구조조정 등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불균형 문제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상당부분 개선되는 경기 순응성을 띠지만, 양극화는 경기순환이나 시장의 자율조정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양극화는 우리경제의 많은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기업부문에서의 양극화(재벌대기업·중소하청기업 간 양극화, 수출기업·내수기업 간 양극화, IT·비IT 양극화 등), 소득과 부의 양극화, 지역 양극화,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남성·여성 양극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 문제는 재벌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금융자원 배분의 왜곡 또는 독과점과도 상당히 관련이 있다. 앞에서는 중소기업에 국한해서 보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 약자의 지위 향상을 위해 금융부문이 기여할 바가 적지 않기 때문에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에도 금융부문의 역할이 작지 않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은 지대하다. 금융은 정보를 생성, 관리함으로써 불완전정보·비대칭적 정보 문제를 완화하고, 시장경제의 위험을 효율적으로 분산·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함으로써 이러한 기업들이 생성, 성장하여 대기업으로 커갈 수 있는 역동적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하고 금융산업이 미성숙·왜곡된 나라에서는 재벌계 대기업이 자금력 하나만으로 중소기업과 지역 상공인을 쉽게 죽이고 있다. 이러한 경제에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되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점점 줄어들고 서민·중산층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과 부의 편중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심화되기 쉬운 환경이다.
이와 같이 금융자원의 독과점 또는 불균등한 배분은 불공정경쟁의 요인이 된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발전하여 금융자원에 대한 공정한 접근성이 보장되면 국민 개개인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면 경제적 약자에게도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다. 즉, ‘금융민주화’가 되면 경제민주화도 진전될 것이다. 금융이 성장·발전하면 중소기업 성장과 경제성장이 촉진되고, 소득불균형이 완화된다는 국제기구의 연구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열심히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정책적으로도 할 일이 많이 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했듯이 재벌금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업은 경쟁을 통해 발전하므로 금융산업에도 건전하고 활발한 경쟁이 촉진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메가뱅크 같이 금융산업의 과도한 대형화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융의 국제화, 또는 국제경쟁력 제고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반면 ‘대마불사’의 위험만 키우고 국내금융시장에 독과점화의 폐해만 야기한다. 또 은행이 대형화될수록 중소기업과 서민들에 대한 금융서비스가 감소한다는 외국의 연구결과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 정부에서 특히 문제가 된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인사개입은 금지되어야 한다. CEO를 포함한 금융기관의 고위임원들이 경영에 전념하기보다는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는 풍토가 사라져야 금융이 건전하게 발전하고 금융민주화가 이루어진다.



6. 금융감독 개혁과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일반적으로 대다수 서민·중산층 국민들은 소액 예금자 또는 소액 투자자들이므로 스스로 자신의 저축과 금융자산을 보호할 능력이나 동기가 약하다. 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본 최근 부실저축은행 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저소득층  등 금융취약계층은 약탈적 금융에 쉽게 노출되므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융부채를 지고 파산하는 등 극심한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금융감독 당국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안심하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금융시장을 감시하고 금융기관을 감독하여 부실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 금융감독 당국은 해야 할 일의 최우선순위에 금융소비자보호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부실감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이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왜곡되지 않게 지배구조나 조직상의 견제와 균형,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감독 조직 및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7. 조세정의와 금융투기 억제를 위한 금융관련 세제개혁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과도한 금융투기와 버블을 억제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금융관련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현행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는 매우 역진적이므로 이를 폐지하고 종합소득과세제도에 편입하거나 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대폭 낮추어 실질적인 종합소득과세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인 4,000만원까지는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이나 같은 세율로 과세하므로 저소득층은 자신의 소득세율보다 높은 세율로 이자소득세를 내는 반면, 고소득층은 자신의 소득세율보다 낮은 세율로 이자소득세를 내는 매우 역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일정한도의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면세를 하고 이를 초과하는 이자소득은 모두 종합소득으로 과세하거나, 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대폭 낮추어 아주 소액의 이자소득에 대해서만 분리과세하면 역진성을 해소할 수 있다.
둘째, 현재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세 0.3%를 부과하고 주식투자수익에 대해서는 비과세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행제도는 논리적 근거도 희박할 뿐만 아니라 조세정의에도 어긋나고, 과도한 투기성 단기투자를 조장하는 등 불합리하므로 개편해야 한다. 소액의 주식투자수익에 대해서는 이자소득과 함께 위에서 말한 면세 또는 분리과세 기준에 포함하고 그 기준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종합과세를 하도록 소득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단, 과도한 단기 투기성 주식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장기보유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로 과세하여 세금감면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과도한 투기성 금융거래는 자산 버블을 키우고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한다. 서민·중산층 금융이용자들이 특히 이러한 버블과 시장불안에 취약하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금융거래세,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거래세, 또는 토빈세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8. 끝맺는 말
이글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금융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보았다. 시장 중에서 가장 시장 속성이 강한 시장이 금융시장이므로, 경제민주화를 위해 금융이 할 역할이 많다 하더라도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기고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 금융이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여하기 위해서는 시장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여야 하고, 합리적인 규제여야 한다. 절차를 따르고 적정한 규제를 집행할 관료와 감독당국 직원의 자질과 정직성, 이를 담보할 국회와 언론 등의 감시가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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